
책임보험은 법이 정한 최소 단위다. 남의 피해를, 그것도 정해진 금액 안에서만 맡는다. 내 차와 내 몸 쪽으로는 한 푼도 오지 않는 구조라, '보험은 들어 뒀다'는 말과 '사고를 감당할 수 있다'는 말 사이에 꽤 넓은 틈이 있다.
- 책임보험은 담보 이름이 아니다. 대인배상Ⅰ과 대물배상 두 가지를 묶어 부르는 말이다.
- 대물배상 의무 한도는 사고 1건당 2천만원. 상대 차가 비싸면 넘는 금액은 내가 배상한다.
- 내 차 수리비와 내 치료비는 나오지 않는다. 자기차량손해·자기신체사고는 임의 담보다.
- 안 들고 굴리면 과태료로 끝나지 않는다. 1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이 붙는다.
증권에 '책임보험'이라는 줄은 없다
증권을 열어 그 네 글자를 찾으면 나오지 않는다.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이 가입을 강제하는 두 담보, 대인배상Ⅰ과 대물배상을 묶어 부르는 관용어다. 흔히 말하는 종합보험은 여기에 대인배상Ⅱ·자기차량손해·자기신체사고 같은 임의 담보를 얹은 것이다.
| 구분 | 대인배상Ⅰ | 대물배상 |
|---|---|---|
| 맡는 대상 | 상대방의 몸 | 상대방의 차와 물건 |
| 사망 | 1억5천만원 범위에서 손해액 (손해액이 2천만원 미만이면 2천만원) | ― |
| 부상 | 상해 급수별 한도 안에서 손해액 (최고 3천만원) | ― |
| 후유장애 | 장애 급수별 한도 안에서 손해액 (최고 1억5천만원) | ― |
| 재물 손해 | ― | 사고 1건당 2천만원까지가 의무 가입 기준 |
| 가입 | 법정 의무 | 법정 의무 |
한도를 읽을 때 걸리기 쉬운 대목이 있다. '1억5천만원'은 사망 사고면 무조건 그 돈이 나온다는 뜻이 아니라, 계산된 손해액을 그 범위 안에서 지급한다는 뜻이다. 다만 손해액이 2천만원에 못 미쳐도 2천만원은 주도록 바닥을 정해 뒀다.
사고 하나를 다섯 갈래로 갈라 보면 경계가 보인다
담보 설명을 읽는 것보다 실제 사고에 얹어 보는 편이 빠르다. 신호 대기 중에 앞차를 들이받은, 가장 흔한 상황을 놓고 나눠 본다.
| 사고로 생긴 손해 | 책임보험이 맡는 부분 | 나머지를 맡는 담보 |
|---|---|---|
| 상대 운전자의 치료비·위자료 | 상해 급수 한도 안에서 지급 | 한도를 넘는 금액은 대인배상Ⅱ |
| 상대 차 수리비 | 2천만원까지 | 초과분은 대물배상 가입금액 |
| 내 차 수리비 | 없음 | 자기차량손해 |
| 내 치료비 | 없음 | 자기신체사고 또는 자동차상해 |
| 상대가 무보험이라 못 받는 손해 | 없음 | 무보험자동차에 의한 상해 |
다섯 줄 중 세 줄이 '없음'이다. 책임보험은 상대방 쪽으로만 흐르는 담보라, 내가 입은 손해는 어느 칸에도 걸리지 않는다.

대물 2천만원이 아슬아슬해진 이유
2천만원은 넉넉한 금액이 아니라 의무 가입의 최저선이다. 상대가 국산 준중형이면 대개 그 안에서 끝나지만, 수입차나 고성능 차가 섞이면 범퍼와 램프, 주변에 박힌 센서 몇 개만으로도 금액대가 달라진다.
넘는 금액은 보험사가 아니라 내가 배상한다. 대물배상 가입금액을 1억이나 그 이상으로 올려 두는 쪽이 일반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만 올린 만큼 보험료가 얼마나 붙는지는 상품·차량·운전자 조건에 따라 달라지므로 견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안 들고 굴렸을 때 붙는 값
의무보험은 사실상 선택지가 없다. 미가입 상태가 확인되면 과태료가 날마다 쌓이고, 그 상태로 운행하면 과태료와 별개로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 비사업용 승용차 기준 | 대인배상Ⅰ | 대물배상 |
|---|---|---|
| 미가입 10일 이내 | 1만원 | 5천원 |
| 11일째부터 하루마다 | 4천원씩 가산 | 2천원씩 가산 |
| 과태료 최고 한도 | 60만원 | 30만원 |
반대편에는 구제 장치가 있다. 뺑소니 차나 무보험차에 치여 어디서도 보상을 받지 못하는 피해자를 위해, 정부가 책임보험 한도 안에서 보상하는 자동차손해배상 보장사업이 운영된다. 가해자가 면책되는 제도는 아니다. 피해자를 먼저 구제한 뒤 정부가 가해자에게 되받는 구조다.

내 증권에서 확인할 다섯 줄
책임보험만 유지하는 선택이 늘 틀린 것은 아니다. 차량가액이 얼마 남지 않은 오래된 차라면 자기차량손해를 빼는 판단은 설명이 된다. 다만 그건 내 차를 포기하겠다는 뜻이지, 남에게 줄 배상까지 최저선에 맞춰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줄일 자리와 줄이면 안 되는 자리는 증권에서 서로 다른 줄에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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